• 창조 인사이트 - 231029 자존감과 효능감의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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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과 효능감의 파괴자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왕상17:21-23).

     

    엘리야는 하나님께 구하여 죽은 아이를 살렸다. 모세도 못 한 기적이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7-38). 엘리야는 하나님께 구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렸다. 모세도 못 한 기적이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왕상18:44-45). 엘리야는 하나님께 구하여 하늘에서 비를 내렸다. 모세도 못 한 기적이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19:1-2). 엘리야는 갈멜산 결투에서 이긴 직후 바알 선지자 450명을 모조리 죽였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19:3-5).

     

    바알 선지자들이 전멸하자 왕비 이세벨이 내일 이맘때 반드시 엘리야를 처단하겠다고 알렸다. 엘리야는 남쪽 유다로 도망쳤다. 브엘세바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광야의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겠다며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엘리야가 하소연한 골자는 자신이 조상들, 곧 그 대표자인 모세보다 못났다는 비교였다.

     

    모세가 수많은 장정들을 거느렸지만 엘리야는 외롭게 혈혈단신처럼 싸웠다. 모세가 여러 왕들을 격파했지만 엘리야는 이세벨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조상들, 곧 그 대표자인 모세와 굳이 비교한다면 엘리야는 열등감, 자괴감, 우울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 장소, 세대가 다른데 저런 종단면 비교는 단언컨대 반역사적이게 어리석다.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살렸고 하늘에서 불도, 물도 내렸다. 모세가 못 한 기적을 행한 것이다. 엘리야는 자신만이 해낸 것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합당한 자존감과 효능감을 가졌어야 했다. 남들과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 열등감을 갖는다면 진정한 자존감, 효능감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참 존귀하구나' 하는 자존감과 '내가 참 잘하는구나' 하는 효능감은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10:38-40).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다 보니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게 아닌가. 마르다는 예수님더러 마리아에게 쓴소리를 한마디 해 주시라고 청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많은 일로 부산할 게 아니라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대답하셨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1-42). 마리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 곧 예수님의 발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편을 선택했다. 누구도 마리아에게서 그것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초대해 대접하기로 선택했으니 그 일을 재주껏 잘해내면 됐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와 비교하는 순간 마르다의 자존감도, 효능감도 바닥을 쳤다. 진정한 자존감과 효능감은 예수님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남들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우월감이 아니다. 마르다는 준비할 게 많아 시간이 더뎌질지라도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을 자존감과 효능감을 갖고 즐겁게 감당했어야 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1:18-19). 장차 베드로가 복음 전파와 목회에 힘쓰다가 십자가 순교로 생애를 마감한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21:20-22).

     

    앞으로 베드로가 어떤 생애로 마감해야 할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자신의 생애를 막내 요한의 생애와 비교해 보고 싶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상대적인 우월감, 열등감을 갖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자존감, 효능감이 아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하다. 네 일, 네 인생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서 내 자존감이 나온다. 나의 어떠어떠함이 내 자존감의 근거가 아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됐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동생이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나를 대우하시는 내용이 내 자존감의 근거인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감정은 진정한 효능감이 아니다. 시대, 장소, 세대에 따라서 자기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모세는 모세 시대에, 엘리야는 엘리야 시대에 자기 역할이 있었다. 마르다는 마르다에 맞게, 마리아는 마리아에 맞게 자기 역할을 감당하면 됐다. 베드로가 십자가 순교로 생애를 마감한다면 요한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요한계시록을 완성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어떠어떠함에 따라 내 자존감이 출렁대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대우하시는 내용이 내 자존감의 근거임을 잊지 말자. 남들과의 비교는 우월감이든, 우울감이든 갖게 한다. 진정한 효능감은 예수님 안에서 나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데서 나온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의 맡은 일을 잘 해내자.

     

    예수님 안에서 자존감 100%, 효능감 100%, 그리고 라이프 100%로 살자. 나비헬스100을 성취하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우리의 나비헬스선교회는 영혼육과 재정의 건강을 추구하려고 한다.

     

    현재 나비헬스선교회의 헬스 아이템 후보로는 심장질환 관련의 '코로나이저''K1 ECP', 뇌질환 관련의 '뉴로하모니''모션밴드', 통증 관련의 '파라웰', 숙면 관련의 '금침', 황산화 관련의 '해죽순'이 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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