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 유일하게 선한 목자
    98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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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과 강도의 특징 2가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34:1-3).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들 곧 목자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양 떼 곧 백성을 먹이고 보살펴야 한다. 그런데 목자들이 자기들만 먹이고 보살핀다. 양들의 젖을 짜고 털을 깎는 것을 넘어 양들의 살과 기름까지 먹는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34:4).

     

    목자들은 양 떼를 먹이고 보살피기는커녕 포악하게 다스렸다. 상하고 병들고 약하고 쫓겨도 돌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명한 현군(賢君)은 드물었고 어리석은 혼군(昏君)이나 포악한 폭군(暴君)이 많았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34:10).

     

    왕들에게 백성은 키움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었다. 백성의 입에 왕들이 먹이를 넣어 주는 게 아니라 왕들의 입에 백성이 먹잇감이었다. 하나님은 백성을 보살피고 돌보고 키우라고 왕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다. 그러나 왕들은 백성을 착취해 왕실을 살찌우는 데 골몰했다. 백성을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배만 섬긴 왕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하나님은 어리석은 혼군들, 포악한 폭군들을 폐하시고 의로운 현군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34:23-25).

     

    하나님은 장차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우시고 그 목자가 양 떼를 치게 하실 것이다. 다윗은 양 떼를 치는 데 진심이었다. 자기 목숨도 내걸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17:34-35).

     

    다윗은 양 떼를 먹이고 보살피고 돌보고 키우는 데 전심을 쏟았다. 이런 목자를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약속이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하나님의 이 약속은 예수 목자, 예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구약성경의 목자장(牧者章)인 에스겔 34장이 신약성경의 목자장인 요한복음 10장으로 이어지면서 성취된 것이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34:5). 혼군들이나 폭군들은 아예 목자가 아니다. 있으나 마나다. 저들은 양 떼를 지키지 않는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34:8). 목자다운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들이 흩어져 맹수들의 밥이 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10:1-5).

     

    여태껏 목자다운 목자는 없었다. 다윗 같은 현군이 세워질 것이라고 에스겔 34장에서 약속됐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목자다운 목자, 약속된 목자가 나타났다. 양의 문이 아닌 곳으로 양우리를 넘어가면 절도와 강도다. 절도와 강도는 불법적으로 양우리를 넘어가 양들을 도둑질하고 강탈한다. 그러나 목자는 정상적으로 양의 문을 드나들며 양들을 인도한다. 목자는 양들을 하나씩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 다른 음성은 낯설어서 도망친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6-10).

     

    비유는 좋은 해석 방법이다.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비유의 오남용은 비유를 천박하게 만든다. 성경 해석을 비유로만 푼다면 반드시 이단과 사이비다. 통일교 문선명, JMS 정명석, 신천지 이만희는 단지 자기 탐욕에 봉사하려고 비유를 오남용한다. 저들은 모든 비유를 총동원해 결국 자기 자신들을 예수의 반열 또는 그 이상에 올려놓는다. 양의 문으로 통과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양우리를 넘어가는 절도와 강도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문선명과 정명석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를 성관계로 비유한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곧 타락한 천사와 잘못된 성관계를 함으로써 이 세상에 원죄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원죄를 해결하려면 원죄가 없는 예수 차원의 자기 자신들과 제대로 된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세뇌시킨다. 소위 '피갈이' 교리다. 문선명에게서 배운 정명석은 문선명보다 더 폭주했다. 성자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몸으로 재림했다고 미혹한다. 자기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초림 예수가 영혼 구원만 했기에 이제 재림 예수인 자기 자신이 육체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며 자기 자신을 슬그머니 예수 위에 올려놓는다. 실제로 정명석은 하늘신부 1만 명의 육체를 구원하겠다고 공언해 놓고서 10-20대 여성들을 마구 성폭행했다.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게 어찌 가능했을까. 철저히 세뇌된 성폭행 피해자를 채홍사 곧 '보고자'로 전환시켜 다단계식 성범죄 영업활동을 하게 했다고 한다.

     

    한편 이탈 방지를 위해 저주와 심판의 발언을 쏟아낸다. 이탈자들이 교통사고로 급사했다느니, 기형아를 낳았다느니 엄포를 놓는 것이다. 누가 이탈할라치면 테러와 납치도 불사한다. 축복식이라는 강제 결혼식을 통해서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든다. 이쯤 되면 빗자루를 메시아라고 해도 믿어야 할 지경이다. 딸이 교주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오히려 감사를 표하는 부모도 있었다지 않는가. 이해 불능의 사이비 집단이다. 아니,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할 범죄 집단이다.

     

    이토록 추악한 교주들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비유가 오남용되는 것이다. 성경의 비유들, 특히 예수님이 하신 비유들과 예수님에 관한 비유들(I am)을 자기 자신에게 연결시켜 자기 자신을 격상시키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제압해야 한다. 예수님의 비유들은 예수님의 전유물이다. 예수님만이 해석하신다. 목자 비유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목자요, 양의 문이라고 풀어 주신다. 그 누구도 목자일 수 없고 양의 문일 수 없다. 예수님만이 목자이시고 양의 문이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절도와 강도는 불특정 시간에 양우리를 불법적으로 넘어가 양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절도와 강도는 목자보다 먼저 양우리로 온다. 예수님보다 먼저 온 왕들이 다 절도와 강도인지도 모른다. 목자는 정해진 때에 양의 문을 정상적으로 드나들며 양들에게 안전과 양식을 제공한다.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목자이시고 왕이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삯꾼 목자는 삯을 위해 일할 뿐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리가 오면 도망칠 뿐이다. 절도와 강도는 양들을 도둑질하고 강탈한다. 추악한 교주들은 양들이 죽을 때까지 착취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일하게 선한 목자이시다. 잃은 양을 찾아오시고 약한 양을 더 챙기신다. 양들이 점점 더 성장하게 하신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도 희생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유일하게 선한 목자이시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더 풍성한 생명을 얻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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