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 내 노력도 하나님의 은혜다
    107 2021-09-11

     210912

     

    노력마저도 은혜 덕분이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9-10).

     

    사도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은 살기등등하게 교회를 박해했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자신의 수고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앞세웠다. 자신의 수고마저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무엇이 은혜인가. 나를 위해 하나님이 먼저 해 놓으신 것, 그것이 은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15-16). 하나님이 나의 모태에서 나를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다. 이것이 은혜다. 은혜가 먼저 있고 삶의 구체적인 전개는 그 다음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4-7).

     

    사도 바울은 모태에서의 선택을 훨씬 넘어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됐다고 단정한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시되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초의 은혜다. 그 다음의 은혜는 천상계에서 하나님이 내 영혼을 먼저 만드신 것이다. 또 그 다음의 은혜는 모태에서 내 존재를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다.

     

    또 그 다음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내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또 그 다음의 은혜는 내가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먼저 도우시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늘 먼저다. 내가 평생 살면서 내 의지로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죄도 짓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늘 먼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4).

     

    예수님이 먼저 나를 붙잡으신 것이 은혜요, 내가 예수님의 그 붙잡으심을 붙잡으려고 달려가는 것도 은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예수님이 먼저 나를 위해 상을 준비해 놓으신 것이 은혜요, 내가 예수님의 그 상을 얻으려고 달려가는 것도 은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예정과 선택, 소명과 사명이 하나님의 은혜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것마저도 은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는 늘 선제적으로 준비돼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사도 바울은 복음 증거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도 바울에 대한 예정과 선택, 소명과 사명이 은혜였고 또한 사도 바울의 의지적인 선교 행위도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었다면 은혜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향한 예정과 선택, 소명과 사명은 선제적인 은혜다. 이 은혜는 아직 미완성이다.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통과해야만 한다. "내 살을 먹고 내 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6:5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1:7). 나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고 선택됐지만 내 인생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덧입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거룩한 사명자가 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시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아주 가깝게 느낀다.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수술을 받을라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십자가 피가 피부로 다가온다. 죄인인 줄 망각하고 살다가 한순간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나는 죄인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절실하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메타버스와 NFT가 대세다. 잔파도가 아니라 거센 물살이다. 10년 후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컴퓨터 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기술 발전에 따라 현실과 가상의 동시성과 연속성이 가능해질 것이다. 메타버스는 연결 공간을 넘어 일상 공간이 되고 있고 소비 공간을 넘어 생산 공간이 되고 있다.

     

    스마트 글래스가 스마트폰을 점점 대체할 것이다. 학습도 문자 중심에서 실험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앞으로 온오프라인 개념이 '온오프버스' 개념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NFT는 디지털 아이템이면서 디지털 화폐이기도 하다. 그래서 메타버스와 가상화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급팽창 중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심지어 종교 영역에서도 이런저런 NFT가 다반사로 발행되고 있다. 물론 해킹의 위험이 전혀 없지는 않다. 메타버스와 NFT는 잔파도가 아니라 거센 물살이다.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4:12). 지금의 우리는 그 옛날에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해야 한다. 예수님의 일이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 국한됐다면 우리의 일은 전 지구적일 수 있다. 우리 앞에는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대형 난제들이 즐비하다. 누군가는 믿음과 용기를 갖고 덤벼들어 해결할 것이다.

     

    대다수는 평생에, 또 대대로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었다. 3대에 걸쳐 계속 노동만 팔았다면 4대부터는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자산가가 나와야 한다. 금융자산가가 되면 모든 형태의 투자를 다 집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그래서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더 창조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요즘은 20-30대도 조기 은퇴를 꿈꾸며 자산 형성에 골몰한다.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시라고(8:18), 또한 좋은 협력자를 만나게 해 주시라고(27:17) 주님께 간구하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18). 축복의 말씀이든, 저주의 말씀이든, 선포의 말씀이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이런 권능이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의 축복, 저주, 선포에 성취의 권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 저주, 선포로 천지를 매고 풀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믿는 사람이 말에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새번역 막7:29). 믿는 사람이 말을 할라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빌4:13).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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