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침 -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
    189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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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비 교주 감별법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10:1-5).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에 목자, 도둑과 강도, 양의 문, 문지기, 양이 등장한다. 목자는 정상적으로 양의 문을 통과한다. 도둑과 강도는 불법적으로 양의 문이 아닌 곳을 넘어간다. 목자가 양의 우리로 오면 문지기가 양의 문을 연다. 문지기는 목자를 돕는 보조자이지 목자가 아니다. 목자가 양의 문으로 들어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한다. 양들을 양의 문 밖으로 이끌어서는 앞서간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 딴 사람의 음성은 낯설어서 도망간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6-10).

     

    예수님은 비유 이야기를 즐기셨다. 아직 안 알려진 핵심의 깊이를 끄집어내는 데 비유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비유는 좋은 해석 방법이다. 그러나 성경 해석을 비유로만 하는 싸구려 오남용이 난무한다. 특히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비유들을 자기 자신에게 교묘히 적용시켜 결국 자기 자신을 예수님의 반열 또는 그 이상으로 올려놓는 사이비 교주들이 교회사에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자칭 주님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가 있을까. 사이비 교주들의 싸구려 오남용으로 비유는 기피 대상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비유들을 자기 자신에게 은근슬쩍 연결시켜 예수님의 권위를 가지려는 종교 사기꾼이 있다면 경계해야만 한다. 육체로 오셨던 주님은 예수님뿐이시고 장차 육체로 오실 주님도 예수님뿐이시다. 주님은 예수님 그 자신으로 오시지, 누구의 육체를 통해 오시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육체 안으로 예수님이 와 계신다는 종교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주님은 예수님 그 자신의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고 또 예수님 그 자신의 육체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이시자 또한 양의 문이시다. 양들은 목자를 따라 양의 문 안으로 들어가 안전을 보장받는가 하면 양의 문을 드나들며 꼴을 얻는다. 문지기는 목자도 아니고 양의 문도 아니다. 단지 목자의 보조자일 뿐이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목자가 아니라 문지기 같은 보조자다. 문지기의 자리를 지켜야지, 목자의 자리를 탐내서는 안 된다. 목자는 정시에, 정상적으로 양의 문을 통과한다. 그러나 도둑과 강도는 불시에, 불법적으로 양의 문이 아닌 곳을 넘어간다. 목자보다 더 일찍 양우리를 덮치지만 양들이 듣지 않는다.

     

    도둑과 강도는 양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양우리를 덮칠 뿐이다. 그러나 목자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양들을 이끈다. 도둑과 강도는 누구인가. 거짓된 선지자, 거짓된 정치 지도자, 거짓된 종교 지도자다. 스스로 목자의 자리 곧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 선지자 노릇, 정치 지도자 노릇, 종교 지도자 노릇을 하면서 양들의 젖과 털, 심지어 피와 살까지 착취한다. 사이비 교주들이 겉으로는 신령해 보이고 영혼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들의 속에는 영혼들을 사냥해 자기 배를 불리려는 탐욕뿐이다.

     

    예수님만이 양들의 목자이시다. 양들이 양의 문으로 들어가 안전을 보장받고 양의 문을 드나들며 양식을 얻는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점점 더 똑똑해지고 점점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도둑과 강도 곧 가짜 목자는 결국 양들을 파멸시킨다. 교회사를 어지럽히는 사이비 교주들은 반정통의 사이비 교리를 추종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세뇌시킨다. 추종자들을 사회의 흐름으로부터 고립시킨다. TV도 못 보게 하고 뉴스도 못 듣게 하고 인터넷 검색도 못 하게 한다. 아프면 믿음이 부족하다며 병원에도 못 가게 한다.

     

    무지몽매하게 만들어서는 허무맹랑한 사이비 교리를 맹신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을 2,000번 읽었다느니, 70일 금식기도를 했다느니,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는다느니, 하나님이 자기 몸 안으로 오셨다느니, 예수님은 영혼만 구원하셨고 육체 구원은 못 하셨다느니, 자기 몸 안에 계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사랑 곧 성교를 통해 육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느니, 하나님이 자기 몸 안에 계시니 자기는 무엇을 해도 죄가 안 된다느니, 자기가 징역을 산 것은 세상의 핍박을 받은 것이라느니, 자기 발목의 전자발찌는 십자가라느니 온갖 헛소리를 지껄인다.

     

    사이비 교주들은 추종자들의 지성 체계를 망가뜨려서는 돈, 시간, 에너지를 착취하고 심지어 성 착취까지 일삼는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사이비 교주들의 목표는 탐욕 충족과 세력 팽창뿐이다. 겉으로는 주님의 사랑을 그렇게 외치지만 저들의 결국은 영혼 사냥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양들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서나 끝까지 예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절대 평강이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15).

     

    삯꾼 목자는 이리가 오면 도망친다. 자기 양들이 아니니까 목숨을 걸고서 돌볼 이유가 없다. 도둑과 강도는 아예 양들을 강탈한다. 사이비 교주들은 양들이 멸망에 이르기까지 양들의 전부를 착취하고 또 착취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수고하신다. 잃은 양은 찾아오시고 약한 양은 더 챙기신다. 양들이 점점 더 성장하게 하신다. 양들을 지키시다가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믿음으로 고백하자. "옛 것은 다 지나갔고 완전히 새 것이 되었다. 영혼도 새 것이 되었고 육체도 새 것이 되었다. 인생도 새 것이 되었고 하는 일도 새 것이 되었다." 공개적인 발언에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는 곳에 응답이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18). 예수님 안에 있으면 땅에서 푸는 권세가 주어진다. 이 푸는 권세를 활용하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맺힌 것, 막힌 것, 엉킨 것, 닫힌 것, 눌린 것이 풀리라고 선포하자. "심신에, 인생에 맺힌 것, 막힌 것, 엉킨 것, 닫힌 것, 눌린 것이 풀릴지어다. 심신에, 인생에 아픈 곳이 나을지어다. 약한 곳이 강해질지어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데 점점 더 바보가 된 것 같고 점점 더 착취당한 것 같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게 아니다. 이상한 교회를 다녔고 이상한 목사를 섬겼고 이상한 설교를 들었을 뿐이다. 목사는 결코 목자가 아니다. 목자는 예수님이시고 양의 문 또한 예수님이시다. 목사는 예수님이 드나드실 때 양의 문을 여닫는 문지기다. 문지기가 목자인 것처럼 해서도 안 되고 양의 문인 것처럼 해서도 안 된다. 그저 양의 문 곁에서 문지기 노릇을 해야 한다. 목사가 양의 문이 아닌 곳을 넘어가면 도둑과 강도다.

     

    목사가 예수님보다 더 일찍 앞서도 도둑과 강도다. 목사가 예수님을 넘어가거나 예수님보다 앞서면 사탄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2-24).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칭찬도 받았고 엄청난 야단도 받았다. 동일한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의 평가는 천지 차이였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6-18).

     

    그 후 베드로는 아마도 예수님의 어깨를 붙잡고 예수님의 가시고자 하는 방향을 제지하려고 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16:21). 예수님의 이 방향에 대해 베드로는 아주 못마땅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to rebuke)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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