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침 - 천명과 운명의 상관관계
    766 2023-01-08

     230108

     

    천명을 이루는 운명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삼상9:15-17).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에 따라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뽑혔다.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삼상10:1). 사울에게 기름이 부어졌고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공개됐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10:6-7).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이 뒤따랐다. "너에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할 것이며 너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삼상10:9-10).

     

    사울의 처음은 이렇게 성령 충만이었다. 그러나 사울의 일생은 아집 충만으로 끝났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15:22-23).

     

    사울의 새 마음이 점점 완고하게 거역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자 하나님도 사울을 버렸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삼상15:35).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로 사울은 제멋대로였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시자 사울의 일생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28:6-7). 사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시작했으나 끝내 무당을 찾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런 것이었다.

     

    천명(天命)은 하늘이 정한 명령 또는 목숨을 뜻한다. 운명(運命)은 자기 스스로 움직여 가는 명령 또는 목숨을 뜻한다. 천명에 순행하며 천명을 이루는 운명이 있는가 하면 천명에 역행하며 천명을 저버리는 운명도 있다. 사울은 새 마음으로 천명을 받았으나 점점 완고해지는 아집으로 천명을 거스르는 일생을 살았던 것이다. 처음은 좋았으나 끝이 악몽인 일생도 있고 처음은 악몽이었으나 끝이 좋은 일생도 있다. 처음과 끝이 다 좋기 어렵다면 처음보다 끝이 좋은 일생을 사는 게 훨씬 낫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7:55-58). 스데반은 일생의 끝에서도 성령 충만했고 자기 운명을 바쳐 천명을 이루었다.

     

    거짓 증인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저들의 겉옷을 지켰을 정도로 청년 사울은 거짓 증인들과 한 패거리였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 벌떡) 일어서 계신다는, 스데반의 마지막 간증을 들었지만 사울은 독한 마음으로 스데반을 죽이는 데 찬성했다.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22:19-20).

     

    사울은 아집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크게 박해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9:1-2). 사울의 아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악몽이었다. 아집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천명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운명을 이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9:3-5).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는 곧 예수님에 대한 박해다. 예수님을 박해했으니 사울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울이 예수님의 철저한 사도가 되게 하는 방식으로 사울의 일생을 다루신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9:8-9). 예수님과의 충격적인 만남 후 사울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해야 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9:15-16).

     

    사울은 특히 이방인들과 왕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천명을 위해 선택됐고 장차 수많은 고난을 당해야 할 터였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9:17-18). 이제 사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님의 사도로 사는 새 길에 나서게 된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13:9). 사울은 유대인이었으나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로마 시민권자였기에 바울이라는 헬라어 이름도 갖고 있었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21:39).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은 특히 이방인들과 왕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천명을 받들기 위해 국제이름 바울을 사용했다. 그만큼 천명에 철저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5-8).

     

    사울 곧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이전의 모든 좋은 것을 해로운 것,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기꺼이 잃어버리고자 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3-24). 바울은 천명 완수를 위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기 생명도 초개처럼 여겼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2). 바울은 천명에 운명을 일치시키려고 계속 노력했고 끝까지 노력했다. 그러나 아집과 집착으로 점철된 노력이 아니라 성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노력이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16:6-7).

     

    바울은 복음 전파라는 천명 수행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집과 집착을 앞세우거나 뒤섞지 않았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랐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6:8-10).

     

    누구나 다 천명을 받지만 천명을 이루는 사람은 적다. 아집, 집착, 탐욕, 조급증, 게으름, 인간관계 등이 뒤엉키면서 천명에 어긋나는 운명을 만들기 때문이다. 첫째 사울이 천명 수행에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개입시킴으로써 천명에서 점점 멀어지는 운명(일생)을 살았고 둘째 사울 곧 바울은 천명 수행에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천명에 점점 다가가는 운명(일생)을 살았다. 첫째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아집으로 끝났고 둘째 사울 곧 바울은 아집으로 시작했으나 성령으로 끝났다.

     

    누구나 다 천명을 받는다. 천명을 모른 채 운명을 사는 사람도 있고 천명을 알지만 천명에 어긋나는 운명을 사는 사람도 있고 천명을 알고 천명을 이루는 운명을 사는 사람도 있다. 첫째 사울처럼 천명을 망치는 운명을 사는 사람이 많고 둘째 사울 곧 바울처럼 천명을 이루는 운명을 사는 사람은 적다. 천명 수행에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자꾸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5-27).

     

    둘째 사울 곧 바울은 복음 전파라는 천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이 뒤엉키지 않도록 자기 몸을 쳐서 성령과 말씀에 복종시켰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12).

     

    첫째 사울은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개입시키고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써 천명을 이루기는커녕 버림을 받는 운명을 살았다. 둘째 사울 곧 바울은 예수님의 영과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복종시킴으로써 천명을 이루고 상급을 받는 운명을 살았다.

     

    누구나 다 천명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복음 전파라는 천명이 있다. 우리가 온전히 바울처럼 살기는 어려워도 바울처럼 살겠다고 다짐은 하자. 바울처럼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것들을 쳐서 성령과 말씀에 복종시키자. 더디더라도 천명을 이루는 운명을 살자. 마지막에 버림을 받지 말고 상급을 받자.

  •  
    사이비 교주들의 특징 2023-03-18 64
    정반대의 흐름도 있다 2023-03-04 114
    자기 전문성과 좋은 인맥 2023-02-19 189
    천명과 운명의 상관관계 2023-01-08 766
    점점 우상으로 변질되는 놋뱀 2022-12-31 83
    최후승리 개선문 2022-12-27 72
    영적 지존이 되게 하는 3가지 2022-11-27 370
    높은 수준의 감사하기 2022-11-19 187
    죄와 심판이라는 잣대의 문제점 2022-11-05 337
    자자손손 계승발전 2022-10-22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