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 - 자격 제한이 없다
    115 2023-03-12

     230312

     

    무자격자도 상관없다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15:11-14).

     

    둘째 아들은 껄렁했다. 미혼의 청년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아버지가 살아 계신데도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했다. 너그러운 아버지는 이참에 두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었다. 곧 둘째의 본색이 드러났다. 며칠도 안 돼서 자기 재산을 다 정리하고는 먼 나라로 떠났다. 남아 있는 가족은 안중에 없었다. 자기 생각뿐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가 재산이 동났다.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들었다. 알거지로 전락했다.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5:15-19).

     

    타국에서 돼지를 치며 더부살이 인생을 시작했지만 끼니도 채울 수 없었다.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그것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신세 한탄이 나왔다. '아버지 집에는 그 많은 일꾼들도 풍족히 먹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생겼구나.'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도리를 못 지키면 하늘과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곤경에 처하면 그 때서야 깨닫게 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15:20-23).

     

    둘째는 염치가 없어서 그저 일꾼으로 써 주시라고 사정해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둘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도 서성이다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둘째를 보고는 달려가 포옹했다. 둘째가 일꾼으로 써 주시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버지는 즉시 둘째의 복권을 선포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라. 잔치를 벌여라." 둘째는 끼니나 때우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환대했다. 곤경이 더 나은 길을 찾게 하고 인간관계를 개선하게도 한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15:24-28).

     

    아버지는 잃었던 둘째를 다시 얻었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다. 하인들도 그 기쁨에 동참했다. 흥겨운 잔치 소리가 집 담장을 넘었다. 밭일하고 돌아오던 첫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묻는다. 장자로서 직접 확인하면 될 것을 왜 묻는가. 둘째가 껄렁했다면 첫째는 꿍했다. 부모와 마음을 서로 나누면 좋으련만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은 껄렁하든지, 꿍하다. 첫째는 화가 나서 잔치에 동참하지 않고 겉돈다. 마땅히 동참해야 할 일에 동참하지 않고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 꼭 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29-32).

     

    형제자매 사이에 사랑이 없고 부모사랑을 독차지하겠다고 서로 덤비면 부모는 힘들고 괴롭다. 첫째의 항변은 그럴싸하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수년간 순종해 왔는데 염소 새끼도 안 주시더니 아버지 재산을 창녀들에게 탕진한 이 둘째가 돌아오니까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첫째의 발언에는 허위가 있다. 탕진한 재산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둘째의 것이다. 또한 창녀들에게 탕진했다는 근거는 없다.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었고 첫째는 잃었던 동생을 다시 얻었다. 함께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가 돌아왔다고 해서 첫째가 손해인 것은 없다. 이미 받은 자기 재산이 축날 것도 아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의 남은 재산마저 다 첫째의 것이란다. 아버지처럼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첫째도 온통 자기뿐이다. 아버지는 자애로운데 아들들은 껄렁하든지, 꿍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전달하시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10).

     

    아버지의 기쁨은 둘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재산은 살아가면서 다시 모으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둘째의 돌이킴 그 자체가 아버지와 하인들의 기쁨이었듯이 죄인 한 사람의 돌이킴은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의 기쁨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대체로 첫째처럼 뚱하다.

     

    비신자들이 둘째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멀리 떠나 살아도 무관심하다.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나님 아버지의 너그러우심을 전할 마음도 없다. 자기 밭일에 몰두할 뿐이다. 설령 비신자들이 돌아온다고 해도 기쁘지도 않다. 허물을 과장되게 지적하곤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우리도 좀 너그러워져야 한다. 비신자들이 돌아온다고 해서 우리의 것이 축나지 않는다. 구원의 티켓은 무한 발행이어서 무한히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장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 한 장이면 족하다.

     

    하나님은 옹졸하시지 않다. 960억 광년의 관측 가능한 우주와 그 너머의 관측 불가능한 우주까지 창조하셨다.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거대인력체가 은하 10만 개를 끌어당기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중력은 우리를 영원무궁토록 끌어당기실 것이다. 사이비 교주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왜곡한다. 저들은 불학무식하고 비유 해석을 오남용한다. , 시간, 에너지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성 착취도 서슴지 않는다. 오직 자기 확장을 위해 영혼을 사냥한다.

     

    기성 교회들의 문턱도 높다. 헌금 강요, 시간 강요, 봉사 강요, 공부 강요가 심하다. 교회에 갔다가는 다 뜯길 것 같아서 겁난다. 사이비 교주들이나 기성 교회들이나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자꾸 무엇을 달라고 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더 달라고 보채는 것 같다. 교회 이미지가 이렇다 보니 비신자들이 한사코 교회 출석을 거부한다. 비신자들의 눈에는 멍청하거나 심약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교회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손을 벌리시지 않는다. 아무것도 착취하시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들을 동원해서 착취한다는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너그러우시다. 우리에게 주시되 요구하시지 않는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17:24-25).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이제 우리는 우주와 만물의 넓이와 크기를 겨우 알아채기 시작했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주와 만물을 주셨다. 그 무한함을 무식해서 모르고 무능해서 못 쓸 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는 생명과 호흡도 주셨다. 지구 3바퀴나 되는 혈관 길이를 피 5l1분 안에 돌게 하셔서 생명이 약동하게 하신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 핏속에 산소를 뿌려서 몸 구석구석에 전달함으로써 생명이 유지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의 주관자이시다. 우주와 만물이 하나님의 발 받침대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손으로 지은 교회당에 계실 수 없다. 교회당 크기 경쟁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의 산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주와 만물을 주셨고 생명과 호흡도 주셨다. 심지어 외아들까지 주셨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하나님께는 결핍, 필요, 소원이 없다. 영어 'want'에는 결핍, 필요, 소원의 3가지 뜻이 있다. 우리에게는 결핍이 있으니 필요도 있고 소원도 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자족하시니 결핍, 필요, 소원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무한히 주신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는 반대급부가 없다. 자격 제한도 없다. 그저 주신다. 무조건 주신다. 우리가 무자격이어도 공격적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1-12). 우리가 세례자 요한 같은 위인 자격을 갖출 필요는 없다. 무자격의 소자일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면 된다.

     

    다 잘 갖춘 후에 공격할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공격하면 된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는 자격 조건이 없다. 무자격자도 신청하면 된다. 플랑크톤 같은 우리가 바닷물 같은 하나님 앞에서 자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자격을 따지지 않고 그냥 바닷물을 들이키면 된다. 한 번에 조금씩 주시라고 구하지 말고 한꺼번에 왕창 주시라고 구하자. "심신에, 인생에 맺힌 곳 수정 삭제

  •  
    허무한 인생을 극복하는 비결 2023-05-27 9
    독불장군과 배짱 2023-05-20 21
    삼위일체와 일체삼위 2023-04-22 69
    신앙인은 하늘 패밀리 2023-04-01 89
    자격 제한이 없다 2023-03-12 115
    첫 우주와 새 우주 2023-02-19 139
    영적 안테나의 유무와 강도 2023-01-29 118
    감사보다 더 나은 것 2023-01-21 123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 2023-01-14 115
    비익조, 연리지, 송라의 하나된 사랑 2022-12-17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