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 - 101번째 생애의 사랑
    94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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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익조와 연리지 같은 사랑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3:2-4 ).

     

    모세는 이집트 사람을 쳐 죽인 게 발각되자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고 거기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해 아들 게르솜도 낳았다. 모세는 사명이니, 대의니 하는 것도 다 잊고 장인의 양 떼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다. 훌쩍 40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장인의 양 떼를 몰고 미디안 광야 서쪽의 호렙 산에 이르렀는데 불붙은 떨기나무가 정작 불타서 없어지지 않는, 희한한 장면이 펼쳐졌다. 모세가 가까이 가서 살피려고 하자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의 이름을 연거푸 부르신다.

     

    모세는 그냥저냥 하나님마저 잊은 채 소소한 나날의 40년을 보냈으나 하나님은 결코 모세를 잊으시지 않고 때가 되매 모세를 찾으셨다. 우리는 큰 뜻을 품고 살다가도 기운이 크게 한번 꺾이면 뒤로 물러나 좀처럼 기운을 펼치지 못하곤 한다. 사명이니, 대의니 하는 것도 다 잊고서 무기력한 나날을 지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시지 않고 계속 지켜보시다가 때가 차매 우리를 찾으신다.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계속 담아 둔다.

     

    "내가 주의 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139:7-10). 우리가 하나님을 피할지라도 하나님은 수많은 눈, 강한 눈, 큰 눈으로 우리를 계속 보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수많은 손, 강한 손, 큰 손으로 우리를 계속 붙드신다.

     

    중국 당나라 때의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의 말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자고 약속했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약속했네). 비익조(比翼鳥)는 두 새가 한 새처럼 서로 붙어서 움직인다. 눈이 하나요, 날개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눈과 날개를 공유하는 것이다. 연리지(連理枝)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한 가지처럼 자란다. 가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비익조와 연리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를 뜻하는 비유다. 부부 사이, 부모자식 사이, 형제자매 사이, 친구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쓰이곤 하는 비유인 것이다. 가볍고 짧은 사랑의 관계가 비일비재한 가운데 비익조나 연리지처럼 묵직하고 긴 사랑의 관계도 있다. 전생, 환생, 윤회가 있다면 비익조나 연리지 같은 사랑의 관계는 천 년이든, 만 년이든 계속 이어져 반복될 것이다. 물론 기독교 세계관에는 전생, 환생, 윤회의 개념이 없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현대인의성경 히9:27). 기독교에서의 죽음과 심판은 단회적이다. 전생, 환생, 윤회가 없다. 만약 전생, 환생, 윤회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10번의 전생을 거쳐 11번째의 환생에서도 계속 이어져 반복될 사랑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요즘에는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두 번 다시 같이 안 살겠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다시 태어나도 같이 살겠다는 부부가 종종 있었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비익조나 연리지처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새번역 롬8:33-35).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하신다. 환난, 곤고,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협, 칼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예수님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전생, 환생, 윤회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예수님은 100번의 전생을 거쳐 101번째의 환생에서도 우리를 위해 계속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놓으실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 죗값을 위해 단 한 번의 영원한 제물이 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를 위해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현대인의성경 히10:12).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회적이면서 영원하다. 예수님이 두 번 죽으실 이유가 절대로 없다. 만약 전생, 환생, 윤회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예수님은 101번째의 생애 동안에도 또 우리를 위해 죽으실 것이다. 그만큼 오래, 강렬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을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어도, 아니 죄인이니까 우리를 사랑하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2). 사람의 사랑은 자격 요건을 따지지만 예수님의 사랑에는 자격 요건이 없다.

     

    예수님의 이런 사랑을 우리가 마침내 깨달아 알 때까지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고 계속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1-3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신다. 만약 전생, 환생, 윤회가 있다고 가정하면 101번째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2-75).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다. 거짓말이면 저주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떼기까지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도 안 나타났다. 피하고 도망쳤다.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도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비틀어진 관계 회복에 중심을 두지 못한 채 디베랴 호수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다. 베드로의 눈은 예수님을 떠났고 베드로의 손은 예수님을 놓쳤지만 예수님의 눈은 베드로를 담아 두었고 예수님의 손은 베드로를 잡아 주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 디두모라 하는 도마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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