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 - 높아지기와 낮아지기
    159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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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아져 섬기기는 정말 어렵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34:1-3).

     

    여기서 '목자'는 왕을 뜻하고 ''은 백성을 뜻한다. 왕의 임무는 백성을 먹이고 지키는 것이다. 통치 곧 정치는 백성을 섬겨 백성이 잘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대로 왕들은 백성을 섬기기는커녕 억압하고 착취해 왕족 팽창에 골몰했다.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대체로 성군, 현군보다 폭군, 혼군이 많았다. 지금의 대통령들은 어떤가.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34:4-6).

     

    정치는 상담, 코칭, 멘토링, 컨설팅과 같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다. 국민이 잘되도록 제도적인 틀을 짜는 사회적 차원이다. 정신과의사가 탁월한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고 한들 그 이후 피상담자의 잘잘못은 결국 개인적 차원으로 돌아갈 뿐이다. 탁월한 정신건강 상담을 받고서 좋은 효과가 있었어도 노동현장에서는 산업재해 사고사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제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은 피해자 개인의 차원이 아니고 사회 제도적 차원이다.

     

    개인 차원의 신앙생활에서 위로와 은혜를 받으나 산업현장에서는 재해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개인 신앙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사회 제도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여야 정치인들이 어렵사리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에 합의했던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런저런 해법들이 난무하면 국민이 도탄에 빠지는 각자도생의 사회일 뿐이다. 사회 제도적 차원의 해법들이 제대로 작동돼야 좋은 사회다.

     

    교회는 하늘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심금을 울리는 심리적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복지를 위해 사회 제도적 장치를 촉구하는 사회적 설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 차원의 심리적 설교가 대부분이고 그런 설교만 들으려고 한다. 요즘의 설교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거의 사회적 설교만 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늘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사회적 차원에서 왕들의 정치를 냉정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양을 쳐다가 죽여 없애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친다"(현대인의성경 요10:10). 에스겔 선지자가 질타했던 목자들 곧 왕들은 강도처럼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죽였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킹-메시아 예수님은 성군처럼 백성을 키우시고 돌보셨다. 백성이 잘되게, 더 잘되게 섬기신 것이다. 심지어 백성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 바치셨다.

     

    "오후 3시쯤에 예수님은 큰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고 외치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셨습니까' 는 뜻이"(현대인의성경 마27:46). 다들 상승욕구에 떠밀려서 정신없이 산다. 어쩌든지 한 단계 더 오르고 싶은 것이다.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역임한 70대 노인들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지금껏 분에 넘치게 올랐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낮아져 섬길 법도 한데 말이다. 한 단계 낮아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누가 자기 수준보다 한 단계 낮아져 섬긴다면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사회 악순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최저 단계까지 낮아져 섬기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6-8).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14:12-15). 감히 하나님과 견주며 교만하게 하나님의 자리를 넘봤다면 맨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아지고자 했던 마귀는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늘 거짓말하고 결국에는 살인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6-9). 다들 한 단계 높아지려고 몸부림치는 판에 한 단계 낮아져 섬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예수님은 죽기까지 낮아져 섬기심으로 가장 높아져 칭송받으시게 된 것이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6-28). 사탄은 높아져 추앙받고자 했고 사탄의 추종자들도 그랬다. 세상에는 높아져 추앙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져 섬기셨다.

     

    우리가 의인도, 위인도 아니고 죄인인데 예수님은 어찌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일까. 우리가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탄의 교만하게 군림하려는 악심을 다스리는 한편 예수님의 겸손하게 섬기려는 선심을 닮고자 흉내라도 내 보자. 자기 수준보다 한 단계 낮아져 섬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귀하게 보자. 모든 게 미숙한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을 보면 축복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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