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 - 믿음은 리액션이다
    118 2020-10-13

     201004

     

    리액션이 믿음이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7:24-26).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외국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리액션이다. 믿음은 리액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For such a reply), 돌아가거라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7:27-29).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누가 이런 리액션의 발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리액션은 리액션을 낳는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For such a reply)..." '네가 말을 그렇게까지 하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리액션이 믿음이다. 나는 리액션이 튀어나오는 사람인가. 리액션이 기적을 만든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뜻을  이루리라 하시더니"(13:22).

     

    하나님은 다윗이 마음에 드셔서 그를 왕으로 예선하셨다. 그러자 다윗은 평생 믿음의 리액션으로 보답했다. 믿음이 있다면서 무반응하게 묵묵부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힘이 여호와,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 나의 반석이시오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18:1-2).

     

    "여호와는...나의 하나님이시오." 수많은 잡신들이 범람하는 중에 여호와라는 호칭의 신만이 나의 신이라는 고백의 리액션은 엄청난 것이다. 여기저기 다 던지는 추파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리는 리액션인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당신 덕분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리액션, 당신 덕분에 내 잔이 넘친다는 리액션은 얼마나 상대방만을 추어올리는 것인가.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삼하6:13-16).

     

    여호와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자신과도 같다. 불행히도 그 법궤가 오랜 시간 이스라엘을 떠났다가 이제 이스라엘로 되돌아오고 있다. 다윗은 공식적인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너무 기뻐서 힘껏 뛰놀며 춤춘다. 다윗은 하나님께 최상의 개인적인 리액션을 드렸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 미갈은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는 다윗을 업신여겼다. 저 역사적인 현장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함께 기뻐하기는커녕 왜 미갈은 자신이 당사자도 아닌 듯이 제삼자의 입장에서 다윗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일까.

     

    "그리고서 다윗은 자기 가족을 축복하려고 집에 돌아왔으나 미갈은 그를 맞으러 나와서 '오늘은 어쩌면 이스라엘의 왕이 그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함부로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왕은 오늘 신하들의 하녀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습니다!' 하고 빈정거렸다"(삼하6:20).

     

    축복의 자리인데 축복의 리액션을 보였더라면 얼마나 복됐을까. 그러나 미갈은 오히려 빈정거렸다. '오늘은 어쩌면 이스라엘의 왕이 그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함부로 자기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왕은 오늘 신하들의 하녀들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습니다!' 다윗이 너무 기쁜 나머지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춤추다가 배를 드러내고 엉덩이를 드러낸 것 같다. 진정성이 의심받고 뭉개질 때 심한 배척감을 느끼게 된다. 한순간 원수가 되는 것이다.

     

    "이때 다윗 미갈의 말에 대꾸하였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것이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부친과 그의 가족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셔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계속 춤을 출 것이오. 내가 이보다 더 바보 취급을 받아도 좋소. 하지만 당신이 말한 그 하녀들에게는 내가 존경을 받을 것이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 죽는 지 자식이 없었다"(삼하6:21-23).

     

    다윗이 대꾸한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것이오!...나는 앞으로도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계속 춤을 출 것이오. 내가 이보다 더 바보 취급을 받아도 좋소.' 다윗은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리액션의 춤을 공개적으로 드렸다. 진정한 리액션은 리액션을 받는 상대방만 의식하는 것이다. 상대방만 의식한 나머지 남들의 비방이나 위협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반응했고 미갈은 하녀들에게 반응했다.

     

    리액션은 리액션을 낳게 마련이다. 다윗은 뼈아픈 처가 가족사까지 들먹인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부친과 그의 가족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셔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소...' 굳이 안 해도 될 말이다. 미갈은 무자식이었다. 하나님의 저주라기보다는 다윗의 무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족한 사람과는 함께 살아도 비방하고 경멸하는 사람과는 함께 살기 어렵다고 한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7:16-18).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 가문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시자 다윗은 자기 뱃속을 갈라 보이듯이 하나님께 진심어린 리액션을 드린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진정한 리액션은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직 상대방을 위해 다 드러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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